*히로미가 정신적으로, 카리자키가 육체적으로 구릅니다.
*egoist 자기중심주의자, 이기주의자
둘의 끈이 연결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끊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카리자키, 아니 카리자키씨. 저는…, 지금 이 관계가 힘듭니다.’
‘그럼 헤어지지 그래?’
허무한 이별이었다. 히로미는 가끔 이 장면을 꿈으로 꾸었다. 꿈에서 카리자키는 한 번도 본인의 쪽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히로미는 그런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에게서 등만 보이는 카리자키가 제 눈에는 연약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보였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 그와는 자주 보는 사이면서, 누구보다도 서먹한 사이와도 같았다. 그-오늘도 하이텐션으로 무언가를 개발 중인 죠지 카리자키-는 예전과 같았지만, 히로미는 그럴 수 없었다. 히로미에게는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감정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히로미는 카리자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 페닉스에서 마지막까지 일할 때까지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전혀 없겠지. 히로미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주먹을 세게 쥐었다. 장갑이 축축해졌다.
데드맨즈가 스카이 베이스를 습격했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하필 지상으로 내려와 경비 인원도 줄어든 이 시점에. 히로미는 페닉스와 스카이 베이스의 안전을 걱정하는 한편 히로미는 카리자키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하필 지금.
잇키와 함께 스카이 베이스로 갔지만, 결국 중간에 도와줄 녀석을 본 그는 결국 카리자키의 쪽에는 잇키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의 버릴 수 없는 천성이 문제였다. 결국 카리자키는 제가 아닌 잇키가 구하러 갔다. 스카이 베이스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히로미는 마음속으로 카리자키만이라도 무사하길 빌었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이 할 리 없는 이기적인 소망이었다.
많이 늦지 않았는지 멀리서 카리자키가 잇키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잇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한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그러나 히로미의 시선은 잇키에서 카리자키로 고정되었다. 그의 부축을 받는 카리자키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항상 입던 외투에 피가 묻은 상태로 너덜너덜해져서. 그때 히로미는 이성이란 줄이 끊어질 뻔한 걸 겨우 부여잡았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었다.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고 해놓고 본인이 다쳐버려서 데몬즈로 변신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걸로 대처가 늦어져서 페닉스의 두뇌인 카리자키가 다친 것도. 둘 사이의 거리는 이제 5m. 카리자키는 먼저 가보겠다며 잇키의 부축도 괜찮다며 거절하고 다시 뒤를 돌아 걸어갔다. 무리해서 움직이시면 아프시잖아요! 기어코 먼저 걸어가는 카리자키를 잇키와 다이지가 뒤따라갔다. 그런 세 명의 모습을 히로미는 보고만 있었다.
*
스카이 베이스 습격 후 한 시간도 안 지났을 무렵, 페닉스의 의료원인 사람 중 하나가 히로미를 찾아왔다. 그나마 페닉스에 들어온 대원 중 오래 지낸 편에 속한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눈치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살짝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카리자키씨가 치료를 안 받으신다는데….”
평소에는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자세히 말하진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히로미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며 그가 들고있던 구급상자를 넘겨받았다.
“카리자키씨는 어디에?”
“스카이 베이스… 사령관실에 계셨습니다.”
“사령관실? 사령관님은?”
“…안 계셨던 것 같습니다. 외출이라고 들었습니다.”
대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다른 일이 있는지 가버렸다. 히로미는 구급상자를 들고 무거운 마음에 스카이 베이스에 들어갔다. 카리자키는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서있었다. 히로미는 빠르게 방안을 살펴보았다. 넘어졌는지 산산이 조각난 꽃병과 구석에 쓰러져있는 의자. 그의 팔에서 손으로 피가 흘러 바닥에 피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에게 가까워지자 피 냄새가 더욱 진하게 났다.
카도타 히로미는 저 꽃병을 알고 있었다. 페닉스가 처음 결성되었을 때 그래도 사령관실인데 무언가 평범한 걸 놓는 편이 좋겠다는 유지로의 말에 카리자키가 사 온 물건이라고. 그때 처음 들어있던 꽃이 사프란이었다고 한다. 많고 많은 것 중에서 선택한 게 꽃과 꽃병이라니. 카리자키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카리자키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카리자키씨.”
“…….”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카리자키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히로미는 한숨을 쉬며 탁자 위에 구급상자를 올려두고 열어서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붕대와 소독약, 그리고 약들.
구석의 의자를 세워 탁자 쪽에 끌어두고 다시 카리자키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깊게 쉬더니 히로미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우리 사이는 nothing, 아무것도-”
“그렇지만, 카리자키씨.”
“shut up, 히로미. 나는 내가 말할 때 중간에 끼어드는 걸 싫어하는데 말이야.”
“상처….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필요 없어! 필요 없으니깐 그냥 이대로 나가라고!”
히로미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그를 내버려두고 나갈 것인가, 그를 치료해줄 것인가. 결국 그가 고를 수 있는 건 후자에 불과했다.
“죄송하지만 그 말은 들을 수 없습니다.”
그는 카리자키의 오른쪽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의 외투를 걷어 올리자 보이지 않던 상처들이 보였다. 외투를 물든 피는 카리자키 본인의 것이었다.
히로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서 우선 외투를 벗겨냈다. 하지 말라고 소리까지 지른 카리자키는 순순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서툴게 벗겨내자 안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옆구리에 긁혔는지 옷이 찢겨 안의 살이 보였다. 결국 히로미는 그를 의자에 앉혀두고 상의를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두툼한 옷감의 긴팔 티셔츠와 안에 입은 반팔 셔츠까지. 그렇게 그의 맨몸이 드러났다.
“…카리자키씨.”
“말 걸지 마, 히로미.”
카리자키는 무언가를 참고 있었다. 히로미는 그것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는 결국 물어보지 않았다. 상처에 조심스럽게 소독약을 바르는데 카리자키는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꽉 쥔 그의 왼쪽 손-오른쪽 손에 비해 멀쩡한 상태였다-만 살짝 떨렸다.
베인 상처와 날카로운 것에 긁힌 자국, 그리고 손등에는 짓눌린 상처가 심했다. 히로미는 자신의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붕대를 감았다. 지금까지 페닉스 생활을 하면서 많이 다치고, 피를 많이 본 그였지만 이 상황은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이 나중에 또 반복될 것 같다는 망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그가 다리를 절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내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상처와 제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가 바지를 올리려는 걸 카리자키는 굳이 막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히로미가 옷을 걷어 올리자 발목의 상태는 심각했다. 깊은 상처가 난 건 아니었지만 보랏빛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히로미.”
“…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네 사과는 안 받아.”
히로미는 그의 말을 듣고 탁자 위에 올려둔 붕대를 떨궜다. 데구르르. 붕대가 저 멀리 바닥에 굴러가면서 풀렸다. 카리자키는 풀려버린 붕대를 아무 감정도 없이 바라보다가 새 붕대를 꺼내 히로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가 눈물이 흐르는 걸 가까스로 참고 있다는 것이 카리자키에게는 선명하게 보였다.
“네 잘못은 없었으니깐.”
“…….”
“그러니깐 그만해.”
“카리자키… 씨.”
“그 낡아버린 감정도 그만 버려줘.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카리자키는 그를 향해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뻗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심하게 떨려 방향을 잘 잡지 못했다. 히로미는 대강 소매로 눈가를 닦고 그의 손을 제 양손으로 지지해주었다. 그는 히로미가 자신을 보게 하고 왼쪽 볼을 쓰다듬었다. 붕대 사이의 그의 피부에서 상냥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히로미는 그를 마주하는 대신 눈을 감았다.
풀려버린 붕대는 피에 젖어 붉게 물들어 버렸다. 이제 저 붕대는 다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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